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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대본을 쓸 수 있어도, ‘말실수의 미학’은 모른다

by 아미군 2025. 4. 30.

언어는 단순히 생각을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다. 그 안에는 말하는 사람의 감정, 생각, 그리고 불완전함이 고스란히 담긴다. 우리는 말하면서 때때로 실수를 한다. 그 실수는 대개 어색함이나 불편함을 주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진심을 담고 있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오늘날, 언어를 사용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변수가 점점 ‘AI’로 대체되고 있다. AI는 훨씬 더 정확하고 논리적이며, 사람들의 대화와 표현을 흉내 낼 수 있다. 대본을 완벽히 쓸 수 있는 AI는 이제 대화형 인터페이스에서도 사람과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발전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AI는 ‘말실수의 미학’을 이해할 수 없다.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인간적인 어색함, 당황스러움, 그 안에서 피어나는 유머와 진심은 AI가 계산해낼 수 없는 영역이다. 이 글에서는‘완벽한 대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불완전함’이라는 점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말실수는 그 자체로 인간의 본능과 감정이 드러나는 순간이자,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적인 매력을 담고 있다.

AI는 대본을 쓸 수 있어도, ‘말실수의 미학’은 모른다
AI는 대본을 쓸 수 있어도, ‘말실수의 미학’은 모른다

완벽한 대본보다 기억에 남는 ‘실수’

누구나 한 번쯤은, 공식석상이나 인터뷰에서 누군가가 대본을 잘못 읽는 장면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실수였음에도 그 장면이 되레 유쾌하거나 인상 깊게 남았던 적은 없었을까? 말실수라는 건 단순히 ‘틀림’이나 ‘실패’가 아니다. 오히려 때론 그 어긋남이 인간의 본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거기엔 진심, 긴장, 순발력, 유머, 당황함 같은 무수한 감정의 파동이 얽혀 있다.

AI는 대본을 정확하게 읽고, 문법을 오류 없이 구성하며, 상황에 맞는 어휘를 세련되게 배치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완벽한 문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종종 사람의 기억에 오래 남지 않는다. 왜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감정을 공유하고 싶지, 정답을 듣고 싶은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한 정치인의 말실수가 대중의 공감을 샀던 이유도, 방송인의 당황한 웃음 속에서 진심이 느껴졌던 이유도 모두 같은 맥락이다. 그 순간에는 ‘인간적인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예상 밖의 실수는 말하는 사람의 진짜 성격이나 감정을 드러내는 하나의 틈이 된다. 이 틈은 기계가 가질 수 없는 여백이다. AI가 아무리 똑똑하게 말해도, 실수로 인해 생기는 감정의 파동을 구현하지는 못한다.

완벽한 말보다, 때때로 어눌하고 버벅인 말이 훨씬 더 깊은 인상을 남긴다. ‘틀림’이 아니라 ‘사람다움’으로 기억되는 순간. 그것이 말실수의 미학이 존재하는 이유다.

말실수는 캐릭터를 만든다 – 스크립트 바깥의 진심

우리가 좋아하는 방송인이나 유튜버를 떠올려보자. 그들이 단지 말을 잘해서, 혹은 지식이 많아서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걸까? 아니다. 그보다는 종종 엉뚱한 말실수, 예상치 못한 리액션,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표현 같은 것들이 그 사람을 더욱 ‘진짜 사람’으로 느끼게 한다.

재치 있는 말실수는 때때로 그 사람만의 캐릭터를 만들어준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말꼬임’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순간들이 대표적이다. 그것은 철저하게 계산된 대본이 아닌, 즉흥적인 순간에 튀어나온 인간적인 실수다. 그 순간에 우리는 그 사람의 인격, 리듬, 말버릇, 심지어 세계관까지 감지할 수 있다. 말실수는 캐릭터의 ‘결함’이 아니라, 오히려 개성과 매력의 증거가 되는 것이다.

반면 AI는 캐릭터를 ‘설정’할 수는 있어도, 즉흥적인 틈이나 감정의 어긋남을 표현할 수 없다. 모든 말이 시뮬레이션된 안전지대 안에 있다. 실수하지 않으려 애쓰는 말, 그래서 오히려 평범하고 건조하게 느껴지는 말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인간이 가장 반응하는 ‘허점’과 ‘진심’의 결합은 AI가 계산적으로 구성할 수 없는 미묘한 조합이다.

이런 점에서 말실수는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스크립트를 벗어난 진심의 출현이다. 캐릭터는 바로 그 틈에서 살아난다. 인간적인 실수가 바로 인간다움을 입증하는 장면이 된다.

AI는 ‘불완전함’을 이해하지 못한다

AI는 언어를 이해하는 게 아니다. 수많은 텍스트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장 확률 높은 단어를 예측할 뿐이다. 다시 말해, AI가 생성하는 문장은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이도록 설계된 결과물’이지, 진짜 맥락이나 감정이 깃든 말은 아니다. 이 차이는 단순히 기술의 한계가 아니라, 존재의 본질적인 차이에서 기인한다.

인간의 언어는 논리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말하는 순간의 맥락, 듣는 이의 표정, 말한 사람의 심리 상태, 심지어 말하지 않은 분위기까지 모두 얽혀 있다. 그리고 실수란 그 복잡한 작용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중요한 건, 우리는 그 실수를 이해하고 감싸 안으며, 때론 거기서 의미를 찾아낸다는 것이다.

AI는 실수를 하지 않는다. 애초에 실수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실패나 틀림이 있어도 그것은 단지 ‘오작동’이나 ‘불량 데이터’로 처리된다. 반면 인간은 실수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상대를 배려하며, 관계를 회복하기도 한다. 말실수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감정이 엉키고 풀리는 하나의 사건이다. AI는 이런 복잡하고 섬세한 인간의 언어 생태계에 들어올 수 없다.

우리는 때때로 잘못된 말을 통해 진심을 확인한다. 실수로 인해 용서를 구하고, 다시 마음을 전하며, 더 깊은 신뢰를 만들어가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은 ‘불완전한 존재’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다. AI는 완벽을 추구할 수는 있어도, 불완전함의 의미와 가능성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언어의 불완전함이 주는 미학

AI가 아무리 똑똑해져도, 그것이 만들어내는 언어는 기계적이고 계산된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AI는 결코 실수를 할 수 없다. 실수란 결국 불완전함을 포용하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경험이다. 우리는 말실수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상대방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며, 때로는 진심을 전한다. 이 과정에서 실수는 단순히 ‘틀린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감정과 진심이 투영된 하나의 표현이 된다.

완벽한 대본이나 흐름을 따지기보다는, 어떤 말이 가장 진심으로 다가오는지, 그 말이 나의 사람됨을 어떻게 표현하는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이 점에서 우리는 AI와는 다르게 살아간다. AI는 언어를 정확하게 구사할 수 있어도, 그 언어의 진짜 의미와 그 언어로 느껴지는 감정을 경험할 수는 없다.

결국, 인간의 언어는 불완전하고 예측할 수 없으며, 그것이 바로 그 언어의 힘과 매력이다. 우리는 실수 속에서 배우고, 실수 속에서 더 나은 관계를 만들어간다. AI는 그것을 흉내낼 수는 있어도, 결코 경험할 수는 없다. 말실수의 미학은 그 안에 감춰진 진심과 감정의 결핍을 온전히 느끼는, 살아 있는 존재만의 특권이다.